전체기사
핫이슈
동포
미국
칼럼
특집
발행인칼럼
탐방
인물탐방
독자광장
한국방송
플로리다백인선
지역별 기사
날씨
달력/행사일정
포토뉴스
동영상 뉴스
칼럼니스트
  뉴스특집
<특집독도1> 독도,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땅
[2008-07-15, 11:00:00] 한겨레저널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공군 헬기가 철통 경비를 하고 있는 "독도"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공군 헬기가 철통 경비를 하고 있는 "독도"
일 총리 또 망언 "독도는 일본 땅"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는 지난 7월 14일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과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기한데 대해 “우리나라의 역사, 영토에 대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것이다”라고 망언을 쏟아냈다.
이에 한국내 시민들과 각종 사회단체들은 일제히 “우리 한국영토에 대한 명백한 침해 행위”라며 비난의 목소리와 함께 규탄대회를 가졌다.
이미 일본 시마네현 의회에서는 지난 2005 3월 16일 오전 회의를 열어 매년 2월22일을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일본은 잊을만하면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야비함과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등 한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더니 이제는 한 술 더 떠 독도 영유권을 또 주장하며 정신병자와 같은 만행을 일삼고 있다. 이는 일본이 얄팍한 속셈으로 국제 사회에 이슈를 만들기 위한 기초적인 계획으로 한국민이 절대 묵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쟁점이다.
이제 우리의 몸은 비록 조국을 떠나 미국에 살고있지만 일본의 만행과 독도 분쟁에 우리 모두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에 본보는 동포들에게 "우리 땅 독도"에 대해 포괄적으로 정리해 독도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땅인가를 다시 한번 4회에 걸쳐 알리고자 한다. 독자들의 많은 성원과 격려를 부탁드리며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일본과 독도에 대한 투고를 기대해 본다. <글 싣는 순서> I. 독도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II. 독도의 경제적, 군사적 가치 III. 독도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 IV. 맺는 말 <편집자>

I. 독도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1. 왜 지금 일본은 독도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가.

사실 일본은 한국과의 영토 분쟁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과의 영토 분쟁을 벌임으로써 대외적으로는 자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외교적 힘을 가늠하고 있으며, 대내적으로는 일본인들의 보수화를 부추겨 국방비의 증강과 자위대의 재정비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 여러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독도문제만 하더라도 이번에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해방 이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국제 사회의 이슈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보면 타당한 의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막강해지고 그에 따라 동북아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미국과 일본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으며, 일본은 그에 대한 대가로 해양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제 독도의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의 수준을 넘어 국제적인 분쟁으로 넘어갈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그것이 일본의 줄기차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독도의 영유권 분쟁이 국제재판으로 넘어가게 되면 일본은 국제 사회에 로비활동을 강화해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국제재판에 회부될 경우 희박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한국민들은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이성적 대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대응으로 나간다면 국제 사회는 일본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 지금은 다각적인 대응과 정부 차원의 대응보다는 민간인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2. 독도에 대한 지리적 이해와 실질적 영유권

이제 독도가 어디에 있는 섬인지는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정확한 위치나 면적에 대하여 정확히 아는 사람이 드물다. 독도는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 1∼37번지(2000년 4월 1일 변경)이며, 34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90km, 경북 울진군 죽변에서 동쪽으로 217km 떨어져 있는 섬이다. 이에 반해 일본 시마네현 히노미사키(日御崎) 해안에서 북서쪽 208㎞지점에 있는 오끼섬에서 약 160km 떨어져 있어, 지리적 근접성으로 볼 때 한반도에 가까운 섬이다.
독도는 크게 동도(東島)와 서도(西島) 두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도의 면적은 64,698평방미터(19,605평)이고 높이는 98m, 서도의 면적은 91,740평방미터(27,800평)이며 높이는 168m이다. 동도와 서도 사이의 거리는 110~160m 이다.
독도는 울릉도 주민들이 어로 작업 등을 할 때 임시로 거주하던 무인도였지만, 삼국시대 이래로 한국인들이 실질적인 영유권을 가졌던 섬이다.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어업활동을 할 때마다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군대를 파견하여 일본인들을 퇴치하였다는 기록이 나와있는 것을 볼 때 우리나라 역사에서 독도는 한번도 영유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1905년 일본해군은 러시아 해군을 정찰할 목적으로 독도에도 망루를 설치하고 일본정부는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로 독도를 오키도사의 관할로 편입시키게 된다. 대한제국이 실질적으로 일본에 의해 장악되고 이후에 일어난 행정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것을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정부는 독도에 경상북도 울릉군 남면 도동 1번지를 부여하여 독도의 영유권을 확실하게 하였다. 또한 일본의 패전 이후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독도는 한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 후 일본이 해양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 한국 정부는 전면적인 조치보다는 실질적인 영유권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다.
예를 들어 1981년에 최종덕씨가 독도 1호 주민으로 호적을 이전한다든가 1991년에는 독도에 일반전화를 개통하고 1996년에는 울릉경비대 산하의 독도경비대를 신설하는 조치를 취한다. 또 1997년에는 동도에 접안시설 준공하게 된다.

3. 일본의 영유권 분쟁과 그들의 주장

일본은 해방 이후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편입하기 위해 갖은 술수를 동원하는 데, 1952년 시마네현 어업시험장 소속 시험선 '시마네마루'호가 독도영해를 침범하는 것을 필두로 최근에 이르기까지 영토분쟁을 획책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 각료들이 나서서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추세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1996년 일본외상이 영유권 천명하고 집권 자민당이 총선공약으로 독도, 조어도, 쿠릴열도 확보를 내세우면서 가속화하고 있다. 2000년에 이르러서는 일본 총리 모리 요시로가 방송국 취재진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함으로써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은 독도문제를 "수면 하의 영토문제"에서 "수면 위의 영토분쟁"으로 부상시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독도 영토편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첫번째로, 근세초기 독도는 일본영토였고 영토편입 직전까지 오랫동안 일본이 "실효적 경영"을 했으며 두 번째로, 영토편입 당시 독도는 주인 없는 돌 섬이었으므로 "무주물선점(無主物先占)"을 한 것이라는 두 가지 논리로 집약될 수 있다.
또한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대일평화조약(Treaty of Peace with Japan)"에 실려있는 제2조 (a)항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그리고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right), 권원(title)과 청구권(claim)을 포기한다."의 세 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은 큰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이 세 섬의 한국의 영토에 포함되는 중요한 섬의 예로서 언급된 것이며, 따라서 울릉도에 딸린 섬인 독도는 당연히 한국의 영토에 포함된다고 보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이 세 섬은 한국 영토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외곽선을 표시하는 섬들이며, 따라서 독도는 한국 영토에서 제외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4. 한국의 대응과 한국정부의 입장

하지만 한국 정부는 독도문제에 관해 "무대응"이 최선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현재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만큼 일본측의 "시비"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독도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올 경우 같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맞대응하면 국제적으로 독도가 분쟁 수역이라는 인식을 심으려고 하는 일본측의 의도에 말려드는 꼴이 되기 때문에 소리나지 않게 독도에 대한 실질적 점유를 강화함으로써 일본이 제풀에 지쳐 포기하도록 만드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러나 국제해양법재판소 등의 심판대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는 이런 상황이 오더라도 일본측의 논리를 제압할 수 있는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 각종 역사적 자료와 지도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일본 측 주장에 대한 대응 논리는 한국 정부는 지정학적으로 독도는 울릉도에서 48해리인데, 일본 은기도에서는 이 거리의 약 2배인 82해리이라는 점과 역사적으로 신라시대 이래로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도 한국의 관리 하에 있다는 점을 들어 영유권을 주장한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한국 정부의 방침도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은 하시모토 류타로 정권 출범이후 "팽창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으며, 과거의 침략정책·전쟁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일본은 지금으로서는 독도 문제를 쟁점화하기에는 불리한 여건임을 알고 있다. 그런 까닭에 최소한의 영토주장을 계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일본의 주장을 보편화, 관례화 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다 때가 오면 언제든지 독도문제를 현안화시키면서 노골적으로 편입(점령)을 가시화 할 것이다. 특히, 국제 사회의 변혁기가 오고, 주변국이나 다른 강대국이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판단되면 독도는 자국의 영토이며, 인근해역도 자국의 해역임을 주장해온 일본은 그간의 입장을 정부의 공식 의견화 하면서, 이전의 수동적인 자세에서 전환하여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는 구체적인 조치에 착수하여 독도와 인근 해역에 걸쳐 해상자위대의 작전 지역내로 편입 확정하고 한국해군의 통과나 주둔을 실력으로 저지할 것이다.
또한 군사력과 힘을 바탕으로 군대 주둔을 시도하여 일방적인 점령을 감행하거나, 독도가 일본 영토임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함으로서 영토편입을 관철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지역 어민과 극우단체 등을 동원하여 독도 편입을 유리하게 여론화하는 노력을 강화할 것 또한 분명하다. 또 행정조치를 취해 일본의 조업구역으로 결정하고 해상자위대의 보호아래 한국어선의 조업활동을 막으면서 일본어선이 제멋대로 조업활동을 본격화해 버릴 것이 틀림없다. 추가적으로 일본의 입장에서 이 지역에 대한 부수적인 조치와 개발계획을 구체화하여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이러한 일본의 시나리오는 상상의 것이 아니라 일본의 지금까지 행보에 따른 전략이라는 것을 한국 정부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05년 3월 노무현 정부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독도문제에 대하여 분명히 하겠다고 천명한바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별다른 대응책을 내지 못했으며, 이명박 정부 들어 이들은 또 독도의 영토주장을 내세우며 한국정부는 물론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일본은 정부와 극우단체가 은밀하게 제휴하며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데 공동으로 행동하는 점을 보면서, 늦은 감은 있지만 한국정부도 국제사회와 민간단체 그리고 양식 있는 일본의 시민단체와 지식인들과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집독도2>
독도,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땅

II. 독도의 경제적, 군사적 가치

1. 유엔해양법 협약과 바다 위의 전쟁

1970년 12월 유엔총회는 각 연안국의 관할권범위 밖에 존재하는 심해저 자원은 인류공동유산이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1973년에 조직과 절차를 결정한 후, 1982년 4월에 본문 320개 조항과 9개 부속서로 구성된 유엔해양법 협약을 채택하게 된다.
이 유엔해양법 협약은 과거의 전통적인 해양체제와 비교할 때 무해통항(無害通航)을 비롯, 통과통항(通過通航), 군도수역(群島水域),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 대륙붕범위, 심해저 규정 등 다음과 같이 6가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협약은 12해리 영해폭을 확정하고 영해 내에서 외국선반에 대한 무해동항(Innocent Passage)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둘째, 협약은 국제항해에 이용되는 해협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서 통과통항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영해의 폭이 확장됨에 따라 해안거리가 24해리미만이 되는 국제해협에 대한 항해의 자유가 크게 제한됨으로써 이들 해협에 대한 제 3국 선반의 통행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다.
셋째, 협약은 군도수역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들의 군사적 안전과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과 같이 해양 한가운데에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의 경우 각 섬마다 영해를 포함한 관할권의 범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군도 중 가장 밖으로 돌출한 섬들의 외측한계를 직선으로 연결, 이를 영해기준선으로 삼는 것이다.
넷째, 협약은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경제수역은 1945년 트루먼 선언 이후 일부 남미국가들이 인접해역의 어족자원을 독점하려는 목적에서 선포하기 시작한 것으로 연안국 해양관할권 확대주장의 상징으로 꼽힌다. 유엔해양법 협약은 영해기준선으로부터 200해리 이내에서 해저, 지하, 상부 수역의 자원개발 및 보존, 공해방지에 관련된 연안국의 배타적 권한을 인정하고 있다.
만약 독도를 기점으로 배타적 경제 수역을 선언할 경우 약 2만k㎡(경상북도 19,020k㎡)에 해당하는 해양면적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을 볼 때 독도의 중요성이 얼마인지 알 것이다.
다섯째, 협약은 대륙붕범위를 종전의 지질학적 개념에서 벗어나 보다 광범위하게 재정의하고 있다.
협약은 대륙붕을 육지영토의 자연적 연장부분이라 할 수 있는 대륙변계(大陸邊界)의 외측까지 또는 대륙변계의 외측이 200해리까지 미치지 않는 경우에는 영해기준선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거리에 있는 해저 및 지하로 정의했다.
여섯째, 협약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심해저 문제에 대한 규정이다.
협약은 연안국 관할권 밖의 심해저 및 광물자원에 대해 인류공동유산 개념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심해저의 자원탐사 및 개발과 이용을 총괄할 국제심해저기구가 설립되게 됐다.
그러나 유엔해양법 협약이 특정유형의 분쟁을 강제관할의 대상으로부터 제외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협약발효에도 불구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응하는 경제수역을 선포할 1977년경에는 한국, 중국과의 마찰이 예상되는 지역은 대상 수역에서 제외하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우익 성향이 강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정권이 출범하면서 독도문제는 외교적인 현안으로 등장하게 된다.
일본은 해양국가이기에 해양에서의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절실함 때문에 인접국가와의 외교적 마찰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분쟁을 일으키게 된다. 한국과의 독도문제, 중국과의 센카쿠 제도(중국명 釣魚島 : 현재 일본이 점령 중) 문제, 러시아와의 쿠릴열도 남단 도서(일본식으로는 북방 4개 섬 : 현재 러시아가 점령 중) 문제는 지금 일본이 벌이고 있는 영토분쟁이다.

2. 독도의 경제적 가치

이처럼 일본이 독도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독도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가치가 막대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독도주변해역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북한한류와 남쪽에서 북상하는 대마난류계의 흐름들이 교차하고 있어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회유성 어족이 풍부하기 때문에 좋은 어장을 형성한다. 회유성 어족인 연어, 송어, 대구를 비롯해 명태, 꽁치, 오징어, 상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또한 해저암초에는 다시마, 미역, 소라, 전복 등의 해양동물과 해조류들이 많아 어민들의 주요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일본이 독도에 관심을 갖는 진짜 이유는 독도주변 해역에 천연 가스층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독도 주변에는 '메탄 하이드레이트'라는 천연가스가 매장되어있다고 알려졌다. 메탄하이드레이트는 천연가스 주성분인 메탄을 함유하고 있는 얼음 상태 물질로, 메탄 등의 가스 분자가 물분자 안으로 들어가서 만들어지는 기포 모양의 결정체다. 간단하게 메탄가스가 언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몇 년 전 미국, 일본, 독일, 캐나다는 21세기 에너지원으로 기대되는 '메탄하이드레이트'에 대한 세계 최초의 채굴 실험을 2002년 초부터 공동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4개국이 실험할 첫 대상지는 북극권인 캐나다 북서부의 매켄지강 하구 델타 지역의 지하 1200m 지점이다.
지금 세계가 메탄하이드레이드에 주목하는 이유는 장래 에너지원으로 개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인류의 주요 에너지 자원은 목재, 석탄, 석유로 변천됐지만 앞으로는 천연가스가 주종을 이룰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천연가스 역시 매장량은 한정돼 있어 2060년 경에는 고갈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반면 전세계에 매장돼 있는 메탄하이드레이트는 천연가스로 환산할 때 1000조~ 5경㎥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현재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에너지의 200∼500년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한국도 메탄하이드레이트를 주목하는 것은 일본 시즈오카 현 앞바다에서만 6조㎥의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된 때문이다. 이를 추적하면 독도 주변 등 한반도 해역에도 엄청난 양이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양수산부는 '해양자원개발 중.장기 실천계획'에서 육상자원 고갈에 따른 대체자원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동해의 배타적 경제수역은 대륙붕과 심해성 지질구조의 특징을 동시에 갖는 지역으로 지하 심부의 석유. 천연가스와 더불어 해저면의 인광상, 메탄수화물 부존이 확인되었으며 해저열수유화광물의 부존 가능성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실제 국내 대륙붕 및 인접 중국과 일본의 석유 발견지점을 지도를 보면, 동중국해에서 동북방향으로 울산남동 쪽을 거쳐 독도인근해역을 거쳐 일본 서부연안을 향해 유전지대가 펼쳐진다고 한다.
또 러시아 과학원의 연구소에서 제공한 동해의 '하이트레이트층'의 분포추정 지도나 석유발견지도의 경향을 보았을 때 독도주변해역의 해양석유자원의 보유가능성은 매우 명확하다.
게다가 독도는 해양과학적 가치로서도 중요한 섬이다. 해양수산부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2000-2002), 백령도 해양과학기지(2003-2005) 구축이후에 오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50억의 예산을 들여 독도해양과학기지를 구축. 운영할 계획이다. 총371억의 국가예산을 투자하여, 해양과학기지를 구축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인간생활과 밀접한 기상업무와 경제활동의 중요한 무대인 해양산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함이며, 독도 등은 그 위치상 기상예보, 해양예보, 어장예보, 지구환경연구, 해양-대기 상호작용 연구 등을 위한 국내 최적지이기 때문이다.
독도해양과학기지 건설계획은 21세기 국가 경쟁력 확보의 원천인 해양자원 개발의 전진기지로서 독도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또한 지질학적인 측면에서도 독도는 그 자체적으로 세계적인 지질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독도는 지금으로부터 약460만년- 250만년전 사이에 해저화산폭발로 형성된 화산섬으로, 해저산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문 예이며, 또한 오랜 세월 동안 파식 및 침강작용에 의해 원래의 모양을 간직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독도는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특집독도3>
독도,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땅

III. 독도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005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와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과 일본의 외교적 마찰을 거론하게 된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의 연계성이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전(前) 대통령들과는 달리 한일관계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는 점에서 외교 마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독도의 문제가 이제는 단순히 한일관계를 벗어나 국제적인 문제로 부각될 수 있다는 조짐이기도 하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금까지 독도를 지켜왔던 우리의 선조들이 있었으며 근현대사에서도 일본의 지속적인 침탈 행위에 대항하여 독도가 분명히 우리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꾸준한 노력들이 있었기에 독도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 독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근대사 이전의 독도를 지킨 노력들

독도와 관련하여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인물은 신라인 이사부인데 그는 내물왕의 4대손으로 지증왕 6년 (서기505년) 지금의 삼척인 실직주의 군주가 되었다가 동왕 13년 하슬라주(현재의 강릉)의 군주로 있을 때 우산국을 정복하였다.
당시 우산국은 신라와는 달리 독립적인 부족의 형태를 이루어 바다를 터전으로 살고 있었으므로 성질이 사납고 거칠어 무력으로 이를 굴복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부는 지혜로서 이들을 복속시키고자 나무로 허수아비 사자를 만들어서 배에 싣고 우산국 해안에 이른 후, "너희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곧 이 사나운 사자들을 풀어 모조리 밟혀죽게 하리라."하고 위협하였다. 이에 우산국 사람들은 순수히 항복하고 매년 신라에 조공을 바치키로 하였다.
이후에 울릉도는 우리나라의 관할 하에 있었다. 하지만 조선조에 이르러 일본의 독도 침탈이 심해졌다. 이에 평범한 상민이었던 안용복의 업적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독도는 우리땅임을 확실하게 인정받는다.
안용복은 1696년 (숙종22년) 동료 어부 16명과 울릉도에 출어(出漁)했다가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울릉도는 본래 우리의 경지인데 왜인이 어찌 감히 월경하여 침범하는가. 너희들을 모두 묶어 마땅하다." 라고 꾸짖었다.
이튿날 우산국에서 잔류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쫓고 그 길로 일본의 호키주에 가서 울릉·우산 양도 감세관이라고 자칭하고 번주에게 "수년전에 내가 이 곳에 들어와 '울릉, 자산' 등이 섬이 조선지계임을 확인하고 관백의 문서를 받아간 일이 있는데, 이 나라는 또 우리의 경지를 침범했으니,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라고 월경의 사실을 항의하여, 사과를 받고 돌아왔다.
이듬해 일본 막부(幕府)는 대마도주를 통하여 형부대보평성상을 조선에 보내어 관백의 결정을 알리고, 1699년에는 최종 외교문서의 교환으로 일본측은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영토로 재확인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조선후기 독도를 일본 영토로 만들려던 일본측의 계획은 실패하고, 독도가 조선 영토임이 양국간에 확인되었다

2. 근현대의 독도를 지키려는 노력

이후에도 변함이 없던 독도의 영유권이 근대의 혼란기를 틈타 일본의 야욕에 의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6.25의 혼란 속에서 일본인들은 1953년 3차례에 걸쳐 독도에 상륙하여 1948년 미군 폭격연습 과정에서 희생된 우리 어부의 위령비를 파괴하고, 일본 영토 표지를 하는 등 불법 행위를 자행했다. 이에 우리 대한민국 국회는 1953년 7월 독도를 보전할 것을 결의하고 경비대를 상주하도록 하였으며 1954년 8월 15일부터 독도 등대를 점등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953년 4월에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6.25 참전 경험이 있는 혈기 왕성한 청년 33명이 중심이 되어 순수 민간 조직인 의용 수비대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독도에 대한 우리나라의 영유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독도근해에서 조업중인 울릉도 주민을 보호하고 독도에 무단 상륙한 일본인의 축출 및 일본 영토표지를 철거했으며, 일본 순시선과 여러 차례 총격전도 벌였다. 일본기가 공격해 올 때에는 큰 통나무에 검은 칠을 해 대포로 위장하여 물리치기도 했다.
이들은 독도에서 갖은 고생을 통하여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접근을 막았으며 1956년 4월 경찰수비대에 수비임무를 인계한 후에도 독도 방파제 설치를 정부에 건의하고, 독도 지키기와 독도 가꾸기 운동을 꾸준하게 벌였다.
의용수비대 이후 울릉도 주민인 최종덕은 1965년에 수산물 채취를 위해 독도에 들어가 거주하면서 어로 활동과 시설물 건립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80년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다시 주장하고 나오자 "단 한 명이라도 우리 주민이 독도에 살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겠다"며 울릉읍 도동 산 67번지 서도 벼랑어귀에 주민등록을 옮겼다. 이후에도 그는 창고를 마련하고, 서도 분지에서 물골이라는 샘물을 발굴하는 등 초인적 노력을 쏟으며 살다 1987년 생을 마쳤다.
1990년대에 이르러 일본의 노골적인 침략의도가 가시화되자 독도를 지키려는 노력이 각계각층으로 확대되었다. 독도박물관은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울릉군이 대지를 제공하고, 삼성문화재단이 건축한 건물에 이종학 초대관장이 30여년동안 국내외에서 수집, 기증한 자료를 근간으로 하고, 故홍순칠대장의 유품 및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와 푸른독도가꾸기모임 등의 자료를 첨가하여 1997년 8월 8일 국내유일의 영토박물관으로 개관되었다.
독도박물관은 독도 및 조선해(동해)를 둘러싼 관련자료를 발굴-수집-연구하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시-관리-교육-홍보함으로써,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와 이론의 토대를 구축하는 동시에 국민의 영토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건립 목적을 두고 있다.

3. 범국민 운동으로서의 독도 지키기

이제 독도지키기는 몇몇 선각적인 인물이나 단체에 의한 것도 아니고 정부의 몫도 아닌 전 국민의 의식 개혁과 맞물려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정부가 은밀하게 극우단체와 손잡고 독도를 빼앗기 위한 노력들을 근 반세기 동안 진행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너무 단기간의 정책만 존재하고 일본의 공세에 따른 수세적인 태도만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실효적 점유에서나 명명백백한 한국의 배타적 영토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적 태도와 공격 외교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근거 없는 주장이 혹시 정당한 것 아니냐는 의문만 축적해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도를 지키기 위해 정부는 정부대로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고, 국민들과 민간단체들은 범국민적인 운동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유명한 사립대의 교수가 일본에 가서 일본의 한국 강점을 고마운 일이라고 표현한 일이 있었다. 그만큼 일본은 지속적이고 은밀하게 우리 사회에 친일 사상을 심어왔다는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시혜를 받은 친일분자들이 아직도 우리의 사회에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일본 유학파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열등감, 일본에 대한 호의가 민족의식을 흐리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 세계는 국경의 해체를 주장하는 세계화의 담론 속에 빠져 민족의식의 위기를 격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의 담론 속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강대국이다. 약소국의 국경을 무너뜨려 자기들의 시장으로 활용하려는 속내가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문화적 공세 속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약소국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더욱 철저하게 민족의식을 가지고 세계화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독도 문제가 나왔다는 것은 어쩌면 반가운 소식이다. 우리 민족은 위기 속에서 강해지는 민족이다. 국민 모두가 위기 의식을 느낄 때 하나의 목표로 뭉쳤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해 보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강한 민족인지 확인할 수 있다.
독도를 침탈하려는 일본의 침략적 야욕은 우리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그에 대한 대응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성적인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각계각층이 혼연일체가 되어 독도를 지켜내야 하며, 거기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나아가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 그것을 통해 민족의 근본문제인 분단의 문제, 즉 강대국에 의해 민족의 문제를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집독도4>
독도,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땅

IV. 맺는 말- 남은 문제들

1. 일본의 유사법제 제정과 군사력 강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들은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따른 부가가치 효과를 노리며 호시탐탐 이러한 망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 어업 지도선은 한국어선을 일본측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불법 조업을 한 혐의로 수십 차례 나포하는 등 문제를 만들어 일본과 한국순시선이 바다위에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등 날로 무력 충돌의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동해 상에서의 대립이 빈번할 것으로 보이는 데 이는 일본이 독도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집착을 보이고 있으며 호시탐탐 기회만을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2003년 6월 유사시 자위대를 해외로 파견할 수 있는 유사법제가 제정하면서 영토분쟁에 대한 집착은 더욱 증대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일본은 해군력과 공군력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 계획의 일환으로 최첨단 전함인 이지스 함을 4척이나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 2척을 추가로 건조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지스 함은 미국의 주력 함정으로 일본과 미국의 시스템의 공동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는 미일 안보협력 체계의 강화라는 명목으로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보여진다.
실제로 일본은 북핵을 빌미로 6자회담에 참가하면서 한반도의 문제에 일정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 과정을 통하여 미국과의 협력 체계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과의 협력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중국과의 대립과정 속에서 미국이 인정하는 가운데 군사력을 강화시킬 수 있으며, 그를 통하여 아시아의 패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또한 그런 과정에서 독도를 비롯한 주변 국가와 벌이고 있는 영토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속셈이다.
미국은 일본을 통해 중국을 견제할 수 있으며 일본의 군사력이 미국의 군사적 한계를 메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미국이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는 이유도 그 중 한가지 일 것이다.
일본은 경제력의 성장을 바탕으로 군사력의 성장과 이를 통한 아시아의 패권 유지라는 야욕을 이제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시네마 현 현내의 공립학교 가운데, 전체 고교가 수업으로 독도를 다루고 있으며, 중학교는 85%, 초등학교는 27%가 독도와 관련된 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시네마 현은 독도와 관련된 자료관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일본 정부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일본 국민들에게 독도의 영유권에 대하여 홍보하면서 미래에 나타날 군사적 형태의 분재을 부추기고 있다는 판단이다.

2. 일본의 도전과 한국민의 응전

일본의 주도면밀한 독도 영유권 논쟁과 한반도 재지배의 야욕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여러 학자들, 경제 관료들 심지어는 정부 관리들까지 나서서 한국에 대한 망언을 일삼아 왔다. 이는 우발적인 발언이 아니라 먼 미래를 보면서 한단계씩 전진해 가는 치밀한 전략의 일환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대응은 감정적이고 유동적인 대응만 해온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외교 정책이 변하면서 효율적인 대응은커녕 악재만 쌓아왔다고 보인다. 일본과의 관계가 단지 한일관계를 벗어나 한미관계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오히려 일본이 미일관계를 이용해 효과적으로 한국과의 관계를 주도해 왔다는 점을 볼 때 깊은 반성이 필요한 것이다. 이는 외교를 단순히 정파의 정략적인 이해관계로 이용하고 있는 천박한 정치관료들로 인해 생겨난 일이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한국의 외교관료 또한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독도는 단순히 작은 섬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독도는 경제적, 군사적 가치는 물론 우리 민족의 미래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섬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어쩌면 독도는 민족의 위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민족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독도 지키기 운동을 통하여 시들어가고 있는 민족 자주정신을 되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사대매국주의이다. 우리 민족의 문화를 폄하하고 강대국의 것이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대주의자들이 한국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제 우리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일본의 속셈을 지혜롭게 생각해 이번이 닥친 어려운 시련을 기회로 삼아 일본의 악랄한 야욕을 전 세계는 물론 온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미국과 군사적 협력 체계를 통하여 독도를 차지하려는 일본의 본 모습을 다시 인식하면서 우리의 민족 자주성을 올바로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또한 독도 지키기 운동을 통하여 남과 북이 하나의 사안으로 연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난주 금강산 관광을 하던 남쪽의 관광객 박왕자(53세)씨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지만 그동안 남과 북은 스포츠, 문화는 물론 개성 경협사업 그리고 금강산 관광사업 등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간에 긴장된 팽팽한 대결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것이 사실이지만, 독도 같은 민족 공동의 위기 상황에는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통일의 길을 앞당길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또한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있는 해외동포들까지 가세한다면 독도는 정말로 작은 섬이 아니라 우리 민족을 한 곳으로 응집시키는 강력한 분화구가 될 것이다. <648~651호> 2008-07-16

ⓒ 플로리다 한겨레저널(http://www.floridakorea.co.kr)

 한겨레 글로벌 네트워크 
플로리다 한겨레저널
작성자
플로리다 한겨레저널 발행인
이승봉 발행인    기사 더보기

[위치정보]

[관련기사]
<독자투고> 어려움에 처한 한국전참전용사를 도와주세요!!!!    2017.01.25   
<독자투고>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2016.11.23   
<독자투고>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2016.10.05   
<독자투고>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보고....    2016.08.24   
“중국에서 죽음의 덫에 걸려 있는 북한 난민을 생각하며”    2016.08.10   
<휴람 의료 정보> “발이 편안해야 삶이 편안”... 발 통증 제대로 치료해야    2016.07.20   
온바오닷컴이 “박근혜 대통령께 올리는 공개서한”    2016.02.24   
<독자투고> 김현철 칼럼과 김봉수 목사의 글을 보고…    2016.01.14   
<독자투고> 김현철 칼럼 본질에 관하여....,    2016.01.05   
<독자투고> 노르망디의 코리안    2016.01.05   
 플러스 광고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TODAY 핫이슈
<기획특집> “코리아타운이 조성”이 한인들의 경쟁력을 높인다. <2> 2008.01.15
2. 플로리다 지역 내 코리아타운 조성의 가능성과 수익성
<독자투고> 7월16일자 '기자수첩'을 읽고! 2007.07.22
"진짜 반성해야 할 한인사회 지도자들" 기자수첩을 읽고
<특집독도1> 독도,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소중한 땅 2008.07.15
일 총리 또 망언 "독도는 일본 땅"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는 지난 7월 14일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과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정신질환인 도박 중독 사랑으로 막아내자 2008.06.17
작년 찰리 크리스트 플로리다 주지사가 세미놀 인디언족이 주내에서 라스베이거스 식 카지노를 운영하는 대신 1년에 1억 달러를 주정부에 납부한다는 내용의 협상안에 서..
<독자투고> 탬파 B팀 코치의 일기 2008.07.08
2008년 7월 4일 Tampa U. S. F. 에서 열린 플로리다 한인연합체육대회에서 홈팀의 이점을 살려 30명에 가까운 탬파 축구회원들이 모두 선수로 참가할..
추천 포토
넘기기
 
 
 
 
프리미엄 광고
온바오닷컴
남미로닷컴
보스톤코리아
플로리다 한겨레저널
널코리아포스트
주간미시간
코리안위클리
오지리닷컴
위클리홍콩
코리아나뉴스
마닐라서울
파리지성
코리아포스트
e스페인
오케이미디어
코리안센터
헤리티지
라스비키
러브코리아
모이자
뉴스코리아
유코피아
뉴스재팬
enknews
enknews
주요서비스 회사소개   뉴스   여행   포토   비즈홈피   커뮤니티   디비리아
Copyright © 2006-2010 www.floridakorea.co.kr All rights reserved.    
© 2010 한겨레닷컴
   RSS FEED